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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飯事

또다시 서울 순례길... 2코스 (4)

by Israzi 2023. 12. 14.

지도를 보니 내가 버스를 타고 지나쳤던 길 옆에 있는 곳인데

어...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감상에

역시 서울은 넓군!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보태서

이번에 가야 할 곳은 조금 기대를 하게 됐다.

여태 무슨무슨 터 위주로 다녔더니 글쿠나아.... 하는 느낌 정도만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번 2코스에서 무엇을 생각했어야 했나 에 대해 조금 고민하던 중이었다.

 

서울역에 가까운 곳이라

기차도 전철도 통행하는 곳이었고

덕분에 사람과 차도 그것들이 통과하기를 한참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곳이었으며

아가에게 기차를 보여주려는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서 와! 칙칙폭폭 간다! 안녕! 빠이빠이! 를 외치는 것도 봤다.

 

이곳에서는 평신도들이 많이 순교하셨다 한다.

 

부지에 확실하게 지어진 박물관이라 찾는 데 어렵지도 않았고

조금은 공원 같은 느낌이라 들어서자마자 여태까지와는 다른 기분을 느꼈는데

 

눈 앞에 바로 서 있는 기념비. 탑? 비? 아무튼.

 

01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빼곡히 적힌 순교하신 분들의 이름을 읽노라니

나라와 개인의 삶이 얼마나 벼랑 끝이었으면

스스로 받아들인 신념 하나로 죽음과 타협 않고 기꺼이 그 고난을 택했을까 싶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참...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시다.

그리고 나는 나이롱이고. 하하.

 

앱에서 본 뚜깨우물을 보러 가는 길에 벤치에 누워 있는 노숙자 상이 하나 있어서 유심히 보며 지나갔다.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없다;;; 셔터를 안 누른 듯;;;)

왜 뜬금없이 여기에?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뚜깨우물도 보고(아마 뚜껑의 옛말 같은데.... 이따가 찾아봐야겠다!)

 

(첨언. 그 노숙자 동상은 노숙자이신 예수님 동상이었다. 아마 가장 낮은 이로 나타나신다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았다.)

 

뚜깨우물

 

건너편에 있는 곳으로 향했더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에서 어둠 끝에 보였던 것은

 

입구!

 

보는 순간,

여긴 오길 잘했다, 순례길이 아니라도 가끔 이곳은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화악 들었다.

정말 너무, 너무 마음이 벅찼다. 저 조형물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공간 전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름. 

 

기존에도 전시가 된 것들이 있고, 거기에 한-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회가 함께 열리는 중이었다.

지하에는 당연스럽게도 조선시대의 사상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성리학부터 실학 서학 동학까지

그 시절의 사상과 서적이 전시되어 있어서

이런 거 좋아하는(?) 나는 여기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족히 넘게 있으면서 많은 것을 봤는데

건진 사진은 여섯 장 정도다.

순서 없이 그냥 이것저것 찍은 걸 업로드해 본다... 기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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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 무순서.

 

기부도 하고 싶고 미사도 드리고 싶었는데

요샌 통 현금을 안 가지고 다녔더니 기부도 못 했고, 미사도 못 드렸다.

 

대신 성물방이면서 기념품 가게인 곳이 정말 규모도 큰 데다가 눈 돌아가게 예뻐서

거기서도 한참을 구경했다.

부모님과 고모에게 드릴 선물을 사고

지인들께 드릴 가벼운 기념품도 구입했다.

 

사실 내 몫의 묵주팔찌와 묵주반지 중 하나를 사고 싶었는데

예전에... 성당 신축 때문에 오셨던 곳에서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신자분들이 너무 연로하셔서 딱히 수입이 될 만한 게 없다 보니
다른 성당에서 여분의 묵주를 기증 받아 수녀님들과 함께 손질해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걸로
건축비를 충당하는 걸 보고서

묵주의 본질이라는 건 결국 기도하는 도구인데
나는 정말 애지중지하는 5단 묵주가 하나 있고(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몫의 묵주로 정해진 묵주이다.)

거기에 엄마가 비즈공예 하시면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내가 항상 하고 다니는 묵주팔찌라서

굳이 묵주를 더 가진다는 건 기도하는 정성 어린 마음이 아니라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섣불리 사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예쁜 게 많았다, 진짜로. 하하하.

 

나름 큰 소비를 하고

도장도 찍고!

벅찬 마음으로, 그리고 걷는 내내 시큰둥 했던 내 마음을 다시 벅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멀지도 않았다. 바로 앞이다,

길 하나 건너면 있는 곳.

 

중림동 약현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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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 성당 표지판과 뒤쪽에서 찍은 성당 모습.

 

약현 성당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래 된 예쁜 성당(스테인드글라스가 이쁘다더라).

그래서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고자 하는 예비부부가 너무 많아서

1년에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다음 해에 결혼식을 하려는 부부들의 신청을 받고

뽑기를 진행해 날짜를 정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들리던 성당이었다.

 

똥손인 너희에겐 너희의 결혼식 날짜를 정할 권리 따윈 없다! 앗핫하!!!

 

그런 소문만 들어보고 가본 적은 없는 성당인데

전시실 앞에 도장 있음 이란 말을 보고 홀린 듯이 도장 찍으러 가면서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천주교 박해와 약현 성당의 역사가 전시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약현 성당의 역사가 있는 공간이다 보니

한국전쟁 때 순교하신 신부님과 수녀님의 이야기도 볼 수 있었고

약현 성당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유서 깊은 성당임을 알 수 있었으며(1890년으로 기억함)

서울대교구의 성당들이 어떻게 분리되어 나갔는지까지 볼 수 있었다.

 

약현 성당은 화재로 완전소실되어 새로 지어졌다는데

새로 지을 때 원형을 복원하러 노력해서인지 빨간 벽돌 성당인데도 예스럽고 소박했다.

전시실엔 화재로 불탄 옛 성당에 있던 여러 성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종...

종도 세례를 받는 건 첨 알았다!!!

그리고 평화방송에서 나오는 삼종기도의 종소리는 약현 성당의 종소리를 녹음해 쓰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첨 알았어!!!

 

전시실을 나와 성당의 성전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처이니 무탈하게 걷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리러 들어갔다.

 

살짝 찍어본 약현 성당 대성전 안.

 

무감했던 마음과 벅찼던 마음을 동시에 느꼈던 2코스 순례길을 무탈하게 걸으면서

시작할 때 드렸던 작은 부탁을 다시 한번 청하며 2코스 순례길을 마쳤다.

1코스 때와는 조금 다르게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2코스였고

몸은 덜 피곤했지만 마음은 어지러웠었는데

결국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약현 성당으로 순례길을 마무리하면서

또다시 다음 길을 기대하게 되었다.

언젠간 3코스를 가야겠다.

가장 길다는 3코스에서 나는 또 어떤 것과 마주하게 될까 생각을 하면서.

 

1코스를 걸은 후 집 근처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해결하면서 먹은 막걸리가 꿀맛이었다.

사실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사 오고 싶었는데

더 지체하다간 퇴근시간에 딱 걸릴 것 같아서 그것은 포기하고

지난번 1코스 때처럼 칼국수와 막걸리로 나에게 작은 사치를 선물하는 걸로 대신했다.

 

2코스 순례길, 무사히 마쳤다.

 

 

 

 

 

 

 

 

 

 

사족.

3코스 길 지도를 첨부한다.

 

서울 순례길 3코스. (출처: 순교자현양위원회 홈페이지)

 

순교자현양위원회 홈페이지에 적힌 안내에 따르면

총 29.5km에 소요시간이 8시간이라고 한다.

마지막 왜고개 성지에서 삼성산 성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얘기도 공식적으로 덧붙여 놨고.

 

사실 다음 주 이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새해 둘째 주쯤 가볼까 했는데

이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이건 아님. 이 길을 생짜로 걷고 나면 나는 죽을 거야. 메이비.

 

그래서, 아직은 어디까지나 그냥 "생각"이긴 한데,

앵두와 함께 할까... 싶다.

새남터에서 절두산 가는 길도 어차피 한강 자도를 이용하면 될 것 같고.

중간중간 언덕길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긴 하는데

안되면 우리에게는 최고의 무기 끌바가 있지 않는가.

점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기로 하고.

 

앵두와 다니려면 적어도 추위는 물러가야 하니까

3월 정도가 될 것 같다.

점검 한 번 받고 그 뒤에 앵두로 달리는 것으로.

아마 시즌온 첫 라이딩으로 29.5km는 무리일 것 같으니까

또 합수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허벅지를 단련시킨 후에 3코스는 다녀와야겠다.

 

어디까지나 계획이 그렇다는 겁니다. 앗핫하!

 

아무튼 당분간 3코스는 묵혀두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