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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飯事

또다시 서울 순례길... 2코스 (1)

by Israzi 2023. 12. 14.

반쯤은 계획대로, 반쯤은 계획에 없던 대로

23년 12월 13일에 서울순례길 2코스를 걸었다.

 

지난주 1코스를 걸으면서는 다음 주에는 2코스를 걸어야겠다 고 생각했으니 계획대로이긴 한데

그 계획이 수요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획에 없던 일이긴 했다.

말장난하려는 게 아니다. 원래는 화요일에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는 일이 생겨서 취소.

수요일에는 그냥 무계획으로 출발.

 

자, 이번에 걸을 2코스는 이러하다.

 

서울 순례길 2코스 (출처: 순교자현양위원회 홈페이지)

 

걷다 보면 따뜻해질 거 같아서 두껍지 않게 입었더니 시작 땐 좀 추웠다.

추울 거라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한낮에는 10도가 넘어가서 가볍게 입었더니만.

 

가장 짧은 코스라는 안내를 믿고 조금 늦게 출발지인 가회동 성당으로 향했다.

빠른 길을 선택하면 너무 많이 환승해야 해서 코스도 짧다 하니 조금 오래가더라도 한 번 갈아타는 방법으로.

살면서 탈 일 한 번 없었지만 지난 순례길에서 타고 내려와봤던 종로 마을버스도 전혀 망설임 없이 척척 탔고.
그래도 한 번 와 봤다고 가회동 성당은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다른 날 왔으니 다른 각도에서 찰칵.

 

도둑질도 해 본 놈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게다가 가회동 성당이 시작 성당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살그머니 대성전에 들어가서 짤막하게 기도를 올리고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사무실에 직원이 계시길래 도장 찍은 방법을 여쭙고(다른 성당이나 성지도 비슷하리라 생각)

성당 입구에 있는 도장을 처음으로 찍어봤다. 꽝!

 

가벼운 발걸음으로 추운 날씨에도 한복을 빌려 곱게 입은 외국인들 사이를 지나쳐 다음 처로 향했다.

광화문 광장이구나.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서 인사동 등등은 다녀봤지만

국현 뒷길은 처음 가봤다.

다른 나라 여행 갔을 때 본 것 같은 분위기의 작은 가게들이 보여서 신기했고(그런데 파는 건 우리 물건!)

뭔가 묘한 느낌의 음식점이나 찻집 같은 것도 재밌었다.

그러면서도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장식도 한껏 되어 있어서

이게 퓨전인가? 싶은 쓸데없는 감상이 몽글몽글.

 

국현 뒷길을 지나 경복궁 동쪽편 담벼락 길을 따라 광화문 광장으로.

 

두 번째 장소는 광화문 124위 시복 터인데....

 

자,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큰 건 아니고 소소한데...

 

위치가, 광화문 북측 광장 바닥 돌, 이라고 써져 있는데

순례자길 앱으로 보면 표시되어 있는 위치가 있거든?

거기에 맞춰서 가보면 돌이 없다.

앱에 등록된 사진 비슷한 돌이 없음.

북측 이래서 몇 번 왔다갔다 했는데 앱에서 보면 내가 표시된 곳에 접근했다 지나쳤다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광화문 앞에서 안내하시는 분께 여쭸다.

이런 거 보신 적 있냐고.

그랬더니 그분 말씀.

아마 이 돌이 아닐 거고(이렇게 생긴 돌을 본 적이 없다 하셨음),
이쪽이 아니라 길 건너에 있을 것 같다, 이 광화문 앞쪽에서는 이런 표시석을 본 적이 없음.

그런데 가끔 "카돌릭 신자"(ㅎㅎㅎ)라는 사람들이 와서 너처럼 묻곤 하는데 이쪽에서 못 찾고 건너갔었다.

가서 경찰한테 묻는 게 어떨까.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길을 건넜다.

광화문 광장은 뭘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주 많은 곳에 펜스를 치고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북측에 있댔으니까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진 않을 테고.

 

구글의 힘을 빌려보니 아 이런. 표시석이 바뀌었단다.

앱에는 대리석판 같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금속판으로 교체된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사진 보자마자 바로 앞 펜스 안쪽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기쁘던데?! 흐흐흐~

 

펜스 옆에 서 계신 경찰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살짝 들어가서 사진 한 장만 찍고 나올 수 없겠느냐 요청드렸는데

경찰 말씀. 펜스는 행사 공사 관계자의 소관이라서 경찰이 열어줄 수 없다.

저쪽에 서 있는 신분증 목에 걸고 있는 사람이 관계자이니 가서 부탁해 봄이 어떨까?

 

그래서 또 관계자에게 쪼르르 갔다.

근데... 얘길 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거다.

딱 한 장만 찍으면 된다고 했는데.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니까 그 아가씨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대체 뭘 찍고 싶은 거냐고 하더라.

저쪽에 있는 저 바닥 금색판만 찍으면 된다, 라고 했더니
나더러 살짝 열어드릴 테니 그것만 찍고 나오셔야 합니다 라더라. 허리가 반으로 접히게 인사를 했다.

 

펜스 근처에 갔더니 경찰 아저씨가 말씀을 얹어 주셨다. ㅎㅎㅎ

사진 한 장 찍으시면 되는 모양이더라고요.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하면서 펜스를 열어주길래 후딱 들어가 잽싸게 한 장 찍고 후딱 나왔다.

그리고 또 허리가 반 접히게끔 인사를 넙죽.

 

겨우 찾았다...!!!

 

사실, 보면 알겠지만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되게 맘이 안 좋았던 게,

그래도 시복 터라고 알려주는 판인데 버려진 후에 밟힌 담배꽁초도 보였고

뭔가 알 수 없는 얼룩도 보였고.

담당자가 무리해서 펜스를 열어줘 겨우 들어가 한 장 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가지고 있던 물티슈로 닦고 왔을 텐데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규칙을 어긴 상황이라(그걸 유도리 같은 걸로 퉁치면 안 되는 거니까)

차마 시간을 더 달라 부탁하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보고 사진까지 찍은 게 어디냐!!

 

작게 자축을 하며 앱을 봤다. 다음 처를 확인했더니 근방이다. 형조 터란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알 수 없는 행사 준비로 광화문 광장 곳곳에 펜스가 놓여 있고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았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이 새로 정비되면서 도로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서

앱과 구글링으로 찾아낸 페이지에서 알려줬지만 아예 없어진 곳들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조 터의 표석을 못 찾았다.

세종문화회관을 바라보고 섰을 때 맨 우측 기둥과 세종대왕님을 잇는 직선 위에 있다던데 거기도 없고

세종문화회관을 따라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조금 치우쳐서 이순신장군님 뒤통수까지 몇 번을 왕복했는데도 못 찾았다.

물론 못 간 곳도 있다. 펜스로 가려진 곳, 공사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곳 등등.

그래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봤지만 형조 터라고 써진 표석은 못 봤다.

어쩌면 가려져서 못 봤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잠시 빼놨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고... 설명을 덧붙여서.

 

01
형조 터 표시석은 못 찾고, 그냥 가기 아쉬우니 찍어봤다. 에잇!

 

물론 한국가톨릭 순교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형조가 있던 터라는 건 어쨌거나 우리 역사 중 일부이기도 한데

그 표시석이 이렇게나 쉽게 옮겨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다.

 

형조 터 표시석 찾는다고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조금 배가 고팠고, 너무 많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