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둘이서 걸으면 너네는 좀이따 빠그작 할끄야.
둘이 걷는 돌담길의 의미가 저런 거라는 걸 알고 읭?! 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무서워서 안 간 건 아니지만 덕수궁은 잘 안 가긴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위치가 어정쩡하다는 거겠고(내 이동 동선에서 어정쩡하단 얘기)
다른 하나는 그 주위에서 주로 하는 시위대의 구호가 나랑 영 안 맞아서
듣기도 싫어서....라고 하면 되려나, 아무튼. 좀 그래. 응.
사실 순례길 걸으면서 절대 안 해야지 했던 게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막고 걷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나에게 예외를 허락하기로 했다.
광화문 광장 쪽에서도 시끌시끌했는데 좀 더 내려가니 소리가 더 커지길래 과감하게 귀를 막았다.
며칠 째 계속 듣고 있는 오래된 노래 하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서 덕수궁으로.
덕수궁 돌담길은 크리스마스의 기운으로 충만하더라!!!
사람들도 복작복작 많았지만 어느 교회에서 길가에 꾸며놓은 트리들 덕분에 많이 예뻤다.
그렇지만 나는 걷고 있었고, 기록 삼아 대충 찍은 사진들은 형편없지. 앗핫하!



언제부터 이 길이 우리가 아는 이 모양(보도블록 깔린 길이란 얘기가 아니라 이 길 형태였을까 하는 얘기)이었을까?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길을 걸었을까?
어디서 시작해서 이 길을 거쳐 어디로 갔던 여정이었을까?
위험구간을 지나 이어폰을 빼고 걸으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정동교회 이쁘네, 이렇게 이쁘면 멀리서라도 예배드리러 오고 싶긴 하겠다.
오, 사라 심슨은 누구였을까(이화여고 안 기념관 간판을 보면서), 뭘 했길래 기념관이 있나.
사람 구경도 하고 건물 구경도 하면서 서대문 역 쪽으로 넘어왔다.
앱에서 시키는 대로 길을 건너서 쭉 내려오다 보니
이야... 정말 중요한 건물이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농협은행 본점 건물!

로또 1등이 되면 걸어서라도 와야 되니 길을 잘 익혀두겠단 말을 가족 단톡방에 썼더니
모든 가족들이 나를 비웃었다. ㅋㅋㅋㅋ
하느님 이전에 이 땅의 순교 성인들께서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실 듯.
땀과 피로 이 땅에서 믿음을 지켰더니 후손이랍시고 저런 나이롱이.... 라고 한탄하실 것 같았다.
뭐, 아롱이다롱이 아니겠습니까? 앗핫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은 경기감영 터.



여기 표지판과 표시석은 길가에 뙇! 하고 있었긴 했는데
설명이 다들 달랐다.
어떤 설명은 서대문역 3번 출구 앞이다, 어떤 것에서는 4번 출구 앞이다,
어느 출구 왼편이다, 아니다 지하로 가야 한다 등등.
결론을 얘기하자면,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에 인도와 도로 경계 화단에 있다.
여기서도 한참 헷갈려하면서 찾아 헤맸는데 결국 마침내 찾고야 말았다.
의외로 눈에 안 띔.
내가 분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경기감영 터의 전시장을 보려면 지하 1층으로 가라는 화살표를 따라가보면 흡연장소이다.
아....
물론 해설사와 동행해서 온다면야 쉽게 찾고 좋은 설명도 듣겠지만
나처럼 생각과 계획 없이 덤비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조금쯤은 정비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저 표시석을 눈에 띄게 만들란 얘기가 아니라
홈페이지나 앱 혹은 도장책에 위치 설명을 좀 자세히 적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홈페이지나 앱은 바로 업데이트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집단지성에 기댈 수도 있을텐데. 가령 나처럼 다녀온 사람들이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그걸 관리자가 취합 정리해서 적어주는 방법도 고려할 법도 한데.
그럼 적어도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지는 않겠지.
다시 얘기하지만 형조 터 표시석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옮겨졌겠지, 없애진 않았을 거고 단지 공사 때문에 못 볼 수도 있고, 차량이 주차되어 못 볼 수도 있는데
모양과 위치를 정확히 적어주면
아 지금 못 들어가서 못 보는구나, 아 지난 공사 이후 옮겨졌구나,
이런 거라도 가늠할 텐데 말이다.
그런 세심함이 많이 아쉬웠다. 특히 이번 2코스에서는.
광화문 광장도 그랬고, 경기감영 터도 그랬는데
이렇게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고 났더니 성지에 대한 감흥이 사라졌다.
1코스에서 낙산성곽의 힘듦 뒤에도 가톨릭대학교 교문 앞에서 느꼈던
마음의 고요함(도로가 조용해야 한단 얘기가 아님)이나
혹은 이벽의 집 터에서 느꼈던 시간의 무상함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오 겨우 찾았다, 찾았으니 다음 코스 찍으러 가자 같은 감상이 고작이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다시 생각해 보니 많이 아쉬웠다.
뭐, 결국 순례길을 걷는 나의 태도가 얕았다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하긴... 로또 1등! 을 외치며 농협은행 본점 사진이나 찍는 인간이니 뭐.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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