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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飯事

열심한 재활용과 늦은 대림환

by Israzi 2023. 12. 9.

지금은 옅은 보라 초를 켜야 할 때이지만.

 

매년 대림환을 만들까 말까 고민하는데

결국 "그런 거 만들어 두면 먼지 낀다." 하는 머릿속의 소리를 무시 못하다 보니
대림환을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대림초는 켜긴 하는데 그것도 매년 아주 열심히 챙겨가며 켜는 건 아니고...

 

올해는 어쩌다 보니 대림절을 나름 치열(?)하게 보내는 중이다.

작년에 사서 읽을 땐 별 생각이 없었던 대림 묵상집 책을 다시 읽는 중인데

한 구절 한 구절이 작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중이고

아마 그래서 순례길을 걸었고

아직 받침 있는 글자 연습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성경의 지혜서 중 잠언과 코헬렛을 필사하고 있다.

 

이렇게 썼더니 무척 종교적이고 독실한 사람 같은데

내가 보는 나는 나이롱신자이다. 그건 정말 확실함. 레알.

 

그런 대림기간을 보내는 중이라서인지

올해는 계속 대림환을 만들까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사 전 집청소를 하다가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드는 모조 전나무 등의 재료들을 한 봉지 찾아냈고

이게 왜 나에게 있지 싶은, 나무...나무토막? 티코스터 사이즈의 작은 나무판 하나도 찾아냈다.

 

그래서 이스라지 공방이 또 열렸다.

이번엔 재활용 재료만으로 제작하는 대림환?

근데 이미 대림 2주가 시작됐는데?!

 

별 건 없고, 5년에 한 번 쓸까말까 하는 글루건으로 적당히 전나무 가지를 나무판에 둘러 붙이고

호랑가시나무 잎과 열매도 중간중간 붙이고

미니 솔방울(이건 진짜 같다!)도 붙였다.

금박이 자꾸 떨어져서 버렸던, 종을 알 수 없는 모조 식물 가지도 붙여서 마무리했더니

지금 내가 촛대로 쓰고 있는 이유식 소분용 내열유리그릇을 한가운데에 놓을 수 있는

대림환 겸 대림초 받침이 완성됐다.

1인 가구에 귀찮은 거 싫어하며 작은 집에 사는 내가 쓰기엔 딱 좋은 사이즈가 되었다.

 

언젠가 한번, 너무 힘든 사순을 보내고

거의 탈진한 상태로 부활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부활 축하한다고 인사를 주고받을 때 나는 그 인사를 할 힘조차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땐 나 자신이 좀 비참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부활이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하고 맞이하는 대림시기 중 이렇게 고민스러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힘들었던 사순처럼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라서

바라건대 이 대림시기가 끝났을 때 내가 맞이할 성탄은 기뻤으면 좋겠다는 것과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성탄의 내가

찾고자 하고 얻고자 하는 답에 아주 조금이라도 가까워졌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파는 것보다 예쁠 리 없고

가까이서 보면 허접하고 내열유리그릇 때문에 웃기긴 한데

그래도 책상 위에 두니 나름 마음이 편해진다.

 

부디 다가올 나의 성탄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어 있기를 기도해 본다.

 

그리고 공방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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