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을 움직이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아버지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실 때마다 마늘을 까셨고(덕분에 엄마는 좋아하신다)
동생은 그림을 그렸다.
나는...
나는 그냥,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거나 다 한다.
바느질을 할 때도 있고 뜨개질을 할 때도 있고.
악필이란 소릴 들어본 적도 없고
글은 비교적 단정하게 쓰는 편인데
요즘에 캘리그래피 교재를 펴놓고 처음부터 글자 쓰는 것을 다시 연습하는 중이다.
시작은 되게 단순했다.
나는 만년필이나 딥펜을 좋아하고
악필은 아니지만 그냥 밋밋하고 단정하기만 한, 소소하게 단점이 좀 있는 내 쓰기 방법을 교정하고 싶어서
만년필이나 딥펜으로 우리글을 곱고 단정하게 쓰는 걸 연습하고 싶었다.
그래서 캘리그라피 책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사 오기도 했는데
거~~~~~~의! 대~~~~~~~~~~부분!
우리글은 붓글씨 쓰기에서부터 내려왔기 때문에 붓으로 쓰는 걸 기초로 연습해야 한단다.
캘리그라퍼가 아니라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한글을 쓰면서 여태 살아왔지만
붓으로 필기를 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미술 시간에 서예를 해본 적은 있지만 붓으로 글씨를 쓴 적은 없다고.
내가 썼던 한글은 연필, 샤프, 만년필, 볼펜, 수성펜, 중성펜(내가 익힌 순서)을 주로 사용해 썼단 말이다!
붓펜조차 손에 쥐어본 적이 없는데 왜 항상 붓이냐고!
책에서 읽으면 바른 자세로 붓을 쥐고 팔을 움직여 등등이 써져 있는데 그건 붓이고.
만년필부터가 붓이랑 전혀 다른 방식으로 쥐는데 왜 꼭 붓으로?!
강하게 시키면 절대로 안하는 성미라서
서점에서 뒤지고 뒤져서 굳이 붓으로 시작할 필요는... 이라고 써진 문장이 있는 책을 사들고 와서
이것저것, 비교적 나에게 익숙한 필기구를 이용해서 글씨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개중에는, 도구에 관한 이야기는 마음에 드는데
막상 써보니 쓰라고 던져준 예시 글씨체들이 나에게 도움이 안 되겠다 싶은 것들이 몇 있어서
그런 책들은 몇 페이지 쓰다가 과감하게 그냥 제꼈다.
나는 단정하게 쓰고 싶은 것이지 멋을 부리고 싶은 게 아니다.
그나마 내가 익숙한 도구들로
그렇지만 저자가 제시한 예시와 꼭 같지만은 않게
어느 책 한 권을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다.
...사실 이것도, 다 쓰고 나서 보면 아마 저자가 제시한 글씨체와 내가 쓰는 글씨체가 다를 듯...
하루 일과 틈틈이 글씨를 쓰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덕분에 쓸데없는 망상이 지하수로를 뚫고 내려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리고 마커라는 건, 그림쟁이 동생 때문에 그림 그릴 때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캘리그래피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 알았다.
어서 마카와 위僞붓펜을 떼고 딥펜으로 건너가고 싶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를 붙이자면,
광화문 교보문고 안 문보장에서 정말정말 마음에 드는 딥펜을 하나 보았다.
필기감이 너무 좋더라.
서걱서걱한 느낌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건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도 진짜 마음에 들었다.
내년 내 셀프생일선물로 찜했다.
흑단목이 매장에 있으면 좋겠다. 사러 갔는데 엄훠, 그건 주문하셔야 해영! 하면 마음 아플 거 같아.
'日常茶飯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볍게 읽은 책 한 권 (0) | 2023.12.11 |
|---|---|
| 열심한 재활용과 늦은 대림환 (0) | 2023.12.09 |
| 서울 순례길 1코스를 걸었다 (4) (0) | 2023.12.06 |
| 서울 순례길 1코스를 걸었다 (3) (0) | 2023.12.06 |
| 서울 순례길 1코스를 걸었다 (2) (0) | 202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