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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飯事

매미집

by Israzi 2023. 7. 9.

몇 년째 장마철이면 꼭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있다.

매일은 아니고, 장마철 중 하루 이틀 정도.

 

인상 깊었던 건 재작년 매미.

재작년 매미는 정말로 비가 콸콸 내리던 날 쫄딱 젖어서 방충망에 붙어 있었다.

내가 방충망 문을 열고 손으로 잡는데도 꼼짝을 않았다.

고이 낚아채서(?)

키우던 커피나무 꼭대기에 붙여줬더니 또 얌전히 붙더라고.

비 그치면 보내줄게, 하고 베란다 문을 닫았는데

 

와....

날개가 마르자마자 이 녀석이 집 떠나가게 맴맴거리고 울어재꼈다.

밤새도록.

어지간해서는 자다 깨는 일이 별로 없는데

매미 울음소리 때문에 자다 깨본 게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도 비가 그치질 않아서 내쫓진 못하고 밤을 보낸 뒤에

물론 들어먹을 리가 없지만 베란다로 나가서 야! 조용히 해!!! 라고 한소리 했는데

분노하셨는지 갑자기 부웅 날아올라 베란다를 아주 휘젓고 다녔다.

집을 내어줬음 좀 고마워하면서 나무에 얌전히 붙어있다가 나갈 것이지! 라고 했더니

극대노 하셨는지 세탁기며 벽이며 천장이며

아무 데나 앉았다가 다시 날기를 반복하며 사람 정신을 쏙 빼놓더란 말이지.

 

점심까지 시끄러운 매미녀석이랑 동거 비스무리하게 하다가

비가 좀 그치길래

날고 있는 녀석을 얇은 니트를 휘둘러서 잡은 후에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바깥쪽에 붙여줬다.

뭐가 대체 맘에 안 든 건지 한참을 맴맴거리더니

한 30분쯤 지나고 갑자기 조용하길래 봤더니 가고 없었다.

 

작년 매미는 장마 사이 비가 좀 그친 날

밤에 잠들기 전 베란다 문을 죄다 열어뒀는데

방충망에 앉아서 계속 맴맴거렸다.

잠 좀 자자, 이놈아!!!

결국 스프레이에 물을 담아 칙칙 뿌렸더니 날아갔다.

 

그리고 오늘.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길래 또 습해지겠구나, 하고 창 밖을 봤는데

올해의 매미씨가 찾아오셨다.

올해도 오셨군요, 매미씨!

비가 또 콸콸 쏟아지려 하길래 안쓰러워서 또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올까 했는데

너어무 방충망 한가운데에 앉아 있어서

방충망을 열어도 내가 팔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그냥 비 올 동안 무사히 앉아 있다가 비 그치면 날개 말리고 조심히 가길 바랄 뿐.

 

그리고 책 읽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비가 그쳐 있었고, 매미가 사라졌었다.

잘 갔겠지 뭐.

 

어머니께 얘기했더니,

"너네집 매미집. 어떻게 해마다 찾아오냐?"

라셨다. ㅎㅎㅎㅎ

 

내년에 또 와도 돼. 지금 체리나무 발아 중인데 그 녀석 좀 자라면 거기에서 비 그칠 때까지 쉬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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